네비게이션

네비게이션

사람이 길을 떠날 때엔 내가 지금 어디 있는지 그리고 어디로 가야 하는지가 가장 알아야 하고 알고 싶은 일일 것입니다.

그길이 초행길이거나 캄캄한 밤중이라면 더욱 그럴 것입니다.

요즈음 웬만한 운전자는 이런 길 안내를 위한 ‘네비게이션’을 달고 다닙니다. 원래 말뜻은 ‘항해’ ‘항해술’을 뜻하는 단어였으나 이제는 상품명이 되어 버렸습니다.

저도 이것을 달고 다니는데 초행길이나 시내 운전에 여간 편리한게 아닙니다.

과속카메라가 있는 곳도 정확히 알려주고 지상파 방송도 시청할 수 있기도 합니다.

이제 며칠 후면 DMB 시스템의 상용화로 100km/h로 달리는 자동차 안에서도 흔들리지 않는 화면을 볼 수가 있다고 합니다.

그런데 네비게이션이 아무리 편리해도 새로 생긴 도로에 대해서는 ‘깜깜이’였습니다.

하루가 다르게 신설도로, 이면도로 등이 생겨나 자칫 네비게이션이 가라는 대로 가면 엉뚱한 대로 가거나 빙빙 돌아 약속장소에 늦게 가기 십상입니다.

자신이 있는 곳은 위성을 통한 위치 제공을 받지만 구체적 도로 안내는 사전에 입력된 정보에 의하기 때문이라고 합니다.

운전자는 새로 생긴 도로를 알고 가로질러 지름길로 가는데 네비게이션이란 놈은 연신 “좌회전입니다. 우회전입니다. 500m앞 U턴입니다.”를 외치며(?) 자신에게 입력된 정보만을 되뇌입니다.

아직은 자동차용 네비게이션 기능의 한계인 모양입니다.

아마 시간이 지나면 자신이 타고 있는 차량의 위치만이 아니라 신설된 도로를 포함한 지형지물을 실시간 사진으로 제공할 날도 멀지 않을 듯 합니다.

내가 어디에 있는지 또 어디로 가야 하는지 비단 운전자만의 관심사는 아닐 것입니다.

7~80년의 인생길을 가면서도 우리는 매순간 이 질문에 봉착하고 있습니다.

‘나는 지금 어디에 있는가? 어디로 가고 있는가?’

아무리 과학이 발달해도 아무리 정보가 많아도 사람들은 더더욱 복잡한 세상을 헤쳐나가야 하는 것 같습니다.

‘나의 뇌’라는 네비게이션보다 훨씬 변화가 빠른 세상을 사노라면 마치 구형 네비게이션을 장착하고 신도시를 찾아가는 기분입니다.

사람들은 수많은 종교를 자신의 네비게이션으로 삼고 있기도 합니다.

어떤 이는 이념을 신봉합니다.

어떤 이는 돈을 가장 확실한 가이드라고 생각합니다.

경우는 다양하겠지만 종교+이념+돈을 적당히 섞어서 자신만의 안전한(?) 운행을 도모하는 사람들도 적지 않습니다.

그 때문에 우리는 자신만의 길안내를 되뇌이는 네비게이션들을 너무 자주 봅니다.

상대방의 처지는 아랑곳하지 않습니다.

이미 자신에게 입력된 생각으로만 외칩니다.

세상은 이미 저만치 나아가고 있는데, ‘좌회전하시오. 우회전하시오. 심지어는 U턴하시오’라며 종용합니다.

자신이 알고 있는 길만이 유일한 길이라고 목소리를 높입니다.

문제는 거기서 그치지 않습니다.

자신이 가리키는 곳으로 가지 않으면 덫을 놓고 엉뚱한 표지판으로 현혹하고 때로는 길을 가로 막습니다.

더 많고 복잡한 길을 만들어 놓고 수없는 정보를 제공하면서 최단거리를 소리 높여 외칩니다.

몇 년전 희망봉엘 간적이 있습니다. 리스본 항을 떠나 바스코다가마의 배가 도착한 희망봉 앞바다를 바라보면서 4~500년전 무동력선으로 그 험한 바다를 헤쳐 온 그들에게 저절로 경의를 표하지 않을 수 없었습니다.

마젤란, 콜롬부스, 바스코다가마....그들이 믿었던 것은 지구는 둥글다. 그리고 자신이 가지고 있는 나침판은 언제나 N극과 S극을 향한다는 굳은 믿음밖에 없었을 것입니다.

오늘 당신은 어떤 믿음이 있습니까?

그리고 언제나 변함없는 나침판을 가지고 있습니까?

우리는 지금 어디에 서 있으며 어디로 가고 있는 것입니까?

여러분 인생길의 참다운 네비게이션을 찾는 한주일 되시기 바랍니다.

2005년 11월 마지막주 월요일 아침에

한탄강가에서 이 철 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