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의 스크랩

떠오르는 것은 둥근 달만이 아닙니다

한성제피로스 2005. 9. 24. 00:11

떠오르는 것은 둥근 달만이 아닙니다.


벌써 10여년째 누워 있는 남편을 간호하는 동창생!

암 수술을 받은 교회 집사님!

훌쩍 저세상으로 가버린 남편의 체취가 아직도 방안에 남아있는 젊은 집사님!

자식이 사고로 비명에 가버리고 난 이세상을 쓸쓸히 사시는 두 老집사님!

막내 딸마저 시집보내고 홀로 사시는 老집사님!

생활고로 집을 나가버린 아내를 기다리는 젊은 남편과 그 두 아들!

할머니와 함께 살며 살림살이를 도맡아 하는 중학생 상수!

아들딸이 다 있건만 홀로 사시는 팔순의 집사님!

이제는 움직일 수조차 없는 근 위축증의 승호!

사고로 전신마비가 된 너무너무 안타까운 재호!

빚에 쪼들려 집나간 부모를 기다리며 사는 5남매!

30이 훨씬 넘었는데도 그냥저냥 사는 용선이!

백혈병 때문에 병원에 갇혀 있어야 하는 지은이!

40이 넘도록 장가 못든 농촌 총각!....


제가 다니는 교회에 있는 사람들의 모습입니다.

농촌의 모습이기도 합니다.


감옥에서 창살에 걸린 보름달을 바라보고 있을 사람들!

군에 가 있는 식구들!

이라크에 파병된 효재!

외국에 공부하러 간 처남!

너무 살기가 힘들어 고향으로 가기가 힘겨운 사람들!

장애인 시설. 양로원에 있는 사람들!

태풍에 삶의 터전을 잃은 이재민들!

전쟁으로 고통받는 사람들!

분단으로 고통받는 모든 사람들!

억울하고 억울한 사람들!

원양어선에서 고기 잡는 선원들!

사원들 월급을 주지 못해 쩔쩔매는 중소기업 사장님들!

분신한 화물노동자!


살면서 만나온 사람들을 떠오르는 대로 적었습니다.

대목장 치고는 평소나 다름없는 장터를 한바퀴 돌면서 떠올려본 사람들입니다.


오늘은 포천 장날이라 명절밑 대목장 구경을 갔었습니다.

한수이북에서는 제일 크게 선다는 포천장도 예년만은 못한 것 같습니다.

젊은이들은 없고 어르신들만이 장구경을 나온 듯 했습니다.

선거때 선거운동 할때만 해도 발디딜 틈이 없이 사람이 많았는데 아직 오후가 아니어서인가 봅니다.

장터에서 국수 한그릇 사먹고 돌아오는 발길이 가볍지만은 않았습니다.

얼핏 보아도 중국산이 지천인 우리네 장터도 세월은 어쩔 수 없나 봅니다.



하지만 우리가 보기에는 힘겨워 보이는 그런 이웃들에게도 언제나 희망이 샘솟고 있습니다.

가시금작화는 딱딱한 가시에서 꽃이 피어납니다. 시련과 고통과 외로움이 더 큰 환희와 승리의 전주곡이라는 사실을 그 시련이 지나고 나서야 알게 되듯이 오늘 우리는 지금 이순간 감사의 제목을 찾아야 할 것입니다.


배우기는 많이 배워 박사, 검사, 판사...

으시대지만 사람답게 사는 법만 빼놓고 배운 사람들!

가진 것은 세상에 없는 것이 없도록 다 가졌지만 사람이 꼭 가져야 할 것이 없는 사람들!

바쁘기는 동트기 전부터 밤이 이슥토록 분주하지만 사람다운 행동은 찾아보기 힘든 사람들!

그런 사람들 속에 당당히 나도 끼어 있다고 생각하면 어떨까?


지금 어렵다는 것, 지금 초라하고 작아 보인다는 것!

그것이 바로 희망의 증거입니다.

눈썹같은 초승달이 자라서 휘영청 둥근달이 되듯 지금 당신이 보름달이라면 기우는 것을 걱정해야 되지 않겠습니까?

떵떵거리며 사는 자들이 진정으로 어려운 사람들을 선동해서 더 가지려 한다면 참 불행이 아닐 수 없습니다.


명절에 모이면 어떤 이야기들이 오갈까요?

희망보다는 절망을, 내일보다는 어제를, 칭찬보다는 비판을..

입을 모아 체념하시렵니까?


저는 이 세상에 대하여 체념하거나 원망하지 않습니다.

체념이 되거든, 원망이 되거든 앞에 떠올렸던 사람들을 생각해 보십시요.

가능하다면 만나 보십시오.

그리고 그들이 만들어내는 기적같은 희망을 만나 보십시오.

흑암과 같이 어둡고 혼돈된 당신의 생각에 한줄기 빛이 어디에서 온다고 생각하십니까?


이번 한가위. 입을 모아 어렵다고 하는 2005년의 한가위

떠오르는 것은 둥근 달만이 아닙니다.

우리가 간절한 마음으로 밀어 올려야 할 마음속의 둥근 달이 있습니다.

그것을 체험하시는 한가위 되시길 기원합니다.


2005년 9월 15일 풍성한 한가위 맞이하시길 기원하며

한탄강가에서 이 철 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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