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의 스크랩

[월요편지] 편견의 폭력과 위선의 혼란

한성제피로스 2005. 8. 29. 14:12
어떤 사람을 내마음같이 믿었던 적이 있었습니다.
그래서 그에게 모든 일을 맡겼습니다.
처음에는 아무런 문제가 없는 듯이 보였지만 세월이 갈수록 마음 문을 닫더니 급기야 내마음의 상처가 되고 그 스스로 원수가 되었습니다.
아마 많은 사람들이 이와 비슷한 경험이 있을 것입니다.

요즘 우리를 힘들게 하는 것은 경제적인 어려움보다 인간 관계의 어려움이 더욱 크기 때문이 아닐까 생각합니다.
우리가 끼니 걱정이 제일 큰 걱정일 때에도 이웃과 사랑을 나누고 정을 나누며 행복하게 살았는데 물질적 풍요는 더 큰 갈등을 불러오고 인간성의 파괴마저도 일상사가 되었습니다.
사람들은 입만 열면 경제가 어렵다고 합니다.
어렸을 적 그 가난하던 시절에도 사람들은 경제가 어렵다는 말은 지금처럼 자주 하지 않았을 것입니다.
‘경제가 어렵다’라는 말은 곧 현 집권세력이 맘에 안든다는 말과 동의어가 되어 버린지도 오래되었습니다.
과거에는 반정부 선동이 주로 학살, 고문, 부도덕, 부패 등등이었는데 ‘요즘은 경제가 어렵다’ 한마디인 것 같습니다.
거기에 좀 살을 붙이면 아마추어 정권 내지는 운동권 정권 정도로 추상적인 표현이 전부입니다.

사실 저도 지금까지 살면서 돈 걱정 안하고 살아온 날이 별로 없는 것 같습니다.
어려서는 남들이 사는 운동화 따위가 갖고 싶어서, 좀 커서는 등록금이나 용돈 문제로, 신혼 시절에는 자취생같은 살림살이로, 이제는 좀 커졌지만 여전히 쪼들리며 삽니다.
아내와 같이 머리를 맞대고 살림살이 걱정을 하다가 언제나 내리는 결론은 똑같습니다.
“여보! 그래도 돈 걱정이 제일 행복한 걱정이지?” 내가 이렇게 말하면
아내는 씩씩하게 “그럼요”하며 동의하는 것으로 저를 격려합니다.
만약에 어디가 아프던지 아니면 자식이 속을 썩이던지 우리의 힘으로 참 해결하기 힘든 일이 얼마나 많습니까?
그래도 돈 걱정이 가장 행복한 걱정입니다.
물론 돈이 있으면 불편함은 많이 줄어듭니다. 그러나 불편함이 곧 불행은 아니거든요.
사실 제가 사람들을 만나서 가만히 얘길 듣고 있노라면 재산이 많은 사람일수록 경제가 어렵다고 강하게 말을 합니다.
나라를 다스림의 근본은 백성을 배부르게 하는 것이 제일 우선입니다.
그 기준이야 시대를 따라 다르겠지만 지금 우리의 배고픔은 무언가 생각을 많이 해볼 필요가 있는 배고픔입니다.

영어에 mistake와 error라는 단어가 있습니다.
우리는 보통 실수라고 번역을 합니다. 두 단어는 언어학적으로는 약간의 경우에 따라서는 아주 큰 차이가 있습니다. error는 어떤 분야에 지식이 없어 저지른 실수나 잘못을 표현할 때 쓰는 단어고 mistake는 알면서 순간적 착각이나 부주의로 일어난 잘못입니다. ‘앗’하면서 고칠 수 있는 것. 이것은 mistake입니다. 우리는 매일매일을 살면서 숱한 error와 mistake를 일삼고 있습니다. 그러나 ‘error'든 ’mistake'든 이것은 곧 고치고 바로 잡으려 노력하면 오히려 발전의 계기가 되는 긍정성이 있습니다.

구더기 무서워서 장 못 담근다는 말의 뜻이 이와 비슷한 것 같습니다.
그런데 잘못을 했음에도 불구하고 회개하지 않는 경우가 있습니다.
그것이 바로 편견과 위선이지요.

편견은 error와 비슷합니다. 뭘 몰라서 고집이 세고 잘못을 저지릅니다. 한마디로 외눈박이죠. 편견의 폭력이야말로 우리 사회의 가장 큰 폭력이 아닐 수 없습니다.
많은 사람들이 저를 만나고 나면 그렇게 말합니다.
굉장히 무섭고 강하고 외골수고 뭐 그런줄 알았는데 아니라나요..
그러니 저를 직접 만나지 않은 사람중에 저에 대해 편견을 가지고 사는 사람이 얼마나 많겠습니까?
저 또한 얼마나 많은 편견을 가지고 살아왔고 사는지 저도 잘 모를 것입니다.
저도 그 편견의 폭력을 휘두르고 사는 셈이죠.
그 편견의 정도가 대한민국은 세계 제일입니다.
이념. 지역감정. 지난 세월 만들어진 각박한 사회구조가 편견을 생산 확대 재생산하고 있습니다.
대통령이 TV에서 국민과의 소통을 호소하는 절박한 목소리를 들어 보셨죠?
실눈을 뜨고 비웃음을 얼굴에 가득 머금고 바라보는 사람을 상상해 보세요.
차라리 주먹으로 한대 맞는 게 나을겁니다.

다음은 위선입니다.
한마디로 겉은 천사인데 속은 악마라는 이야기입니다.
Mistake와 비슷할 것입니다.
알면서 저지른다는 의미에서는 말입니다.
자신에게 이익이 된다면 손금이 닳고 헛웃음을 흘리면서 온갖 아양을 떨다가도 손해가 된다 싶으면 찬바람이 돌도록 바뀌는 사람들이죠.

편견과 위선은 그 차이야 어찌되었든 둘다 타인을 괴롭힌다는데 있고 폭력적이라는데 그 심각함이 있습니다.
더 큰 문제는 편견과 위선은 회개하기 힘든다는데 있고 편견과 위선으로 인해 그 스스로 영혼을 갉아먹는다는 것입니다.
그리고 편견과 위선일수록 더욱 확신에 차 보이기도 합니다.
종교라는 이름의 편견, 이데올로기라는 허울의 편견, 불쌍한 자들에 대한 자비라는 외투의 위선들. 이 얼마나 확신에 차 보입니까?
사기꾼일수록 그럴 듯 해 보이거든요.

무더운 여름을 이겨낸 곡식들이 열매를 맺습니다. 뜨거운 태양과 비바람을 맞은 그대로 열매를 맺습니다.
쭉정이는 다 그만한 이유가 있었던 것이지요.
편견의 폭력과 위선의 혼란이야말로 경제의 어려움보다 크고 또 큰 것입니다.

가을이 성큼 다가왔습니다. 엊그제 산속에 있는 공사현장에 갔더니 제철을 놓치기 안타까워하는 매미들의 노래소리가 장엄하리만큼 대단했었습니다. 가을의 눈으로 보면 매미의 울음은 시사하는 바가 많았습니다.
편견과 위선 그것은 폭력이요 혼란입니다. 편견은 다양한 독서가 필요하고 위선에는 믿음이 즉 신앙이 필요합니다.
편견은 무식하다는 뜻이고 위선은 섣불리 안다는 뜻입니다.
편견은 인간의 지식으로도 많이 고쳐지지만 위선은 궁극적 진리에 대한 탐구와 믿음이 있어야 고쳐집니다.
편견과 위선을 적당히 배합하여 복제한 인간 ‘’가 새삼 떠올려지는 요즘입니다.
돈 걱정은 가정사에서는 가장 행복한 걱정이고 경제 걱정이 나라를 다스림에 있어서는 가장 편한 걱정이라고 서로를 격려하면서 한주일을 시작합시다.

2005년 8월 마지막주 월요일 아침에
한탄강가에서 이  철  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