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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 : [월요편지44] 독도의 정치학

한성제피로스 2006. 5. 2. 22:50
제 목 : [월요편지 44] 독도의 정치학!
글쓴이 : 이철우
날 짜 :
2006-05-01 10:35
조회 : 19

[위 독도 사진은 네이버 출처]

독도의 정치학

오다 노부나가. 도쿠가와 이에야스. 토요토미 히데요시로 이어지는 막부정치는 일본 역사의 황금기라고 해도 과언이 아닐 것이다.
일본을 상징하는 가치 체계가 이때 정립이 되었기 때문이다.
사실 천황은 막부정치가 힘을 다하고 산업사회로 넘어오는 메이지 유신으로 오히려 강화되었고 일본의 군국주의를 위한 상징으로 밖에는 의미가 없다.
막부시대의 왕은 그야말로 허수아비였기 때문이다.

섬나라 일본!
참으로 독특한 나라고 역량있는 나라고, 배울점도 많은 나라다.
막부의 마굿간 청소부 히데요시가 일본의 최고 권력자가 되는 과정은 일본인들의 입지적적 모델이 되어 버렸다.
일본의 정치인들은 이때부터 넘치는 힘을 외부로 돌려야 함을 배우게 되었다.
그것이 임진왜란이고 조선말의 식민지 개척이었다.
주체할 수 없는 힘을 전쟁으로 소모하고 잿더미에서 또다시 일어나고 또 탕진하는 일본의 숙명적인 역사의 순환을 보면 지금 독도 문제의 본질을 이해할 수 있을 것이다.

임진왜란으로 한껏 부풀었던 중세 막부정치는 내리막 길을 걸으면서 메이지유신을 기다려야 했다.
일본인들의 실용적이고 무서울 정도로 기질화되어 있는 장인정신은 서양과학을 받아들이면서 단시간 내에 폭발하게 된다.
사무라이의 검을 만들던 풀무꾼들은 순식간에 가미가재의 비행기를 만들게 되었다.
그들은 남태평양으로 만주로 힘 닿는데까지 그들의 힘을 탕진해야 했다.
원자폭탄으로 항복을 했지만 이미 일본은 메이지유신으로 부풀렸던 그들의 풍선이 거의 바람이 빠진 상태였다.
또다시 세계의 높은 벽을 확인한 일본은 자신들의 한계를 곱씹고 곱씹으며 전후 재건에 몰입한다.
미국의 우산아래서 철저히 자신들의 장점을 살리고 6.25 한국전쟁, 월남전 특수는 일본 재건의 엄청난 디딤돌이 되었다.

지금 생산되고 있는 자동차의 삼분의 일은 일본산이다.
자동차. 전자산업이 우리의 핵심산업이지만 그 소재는 모두 일본에 의존한다.
그런 일본이 더 이상 주체할 수 없는 힘을 갖게 되었다.
어딘가 그들의 힘을 탕진하고 한 시대를 마감해야 하는 숙명적 주기가 되었다.
그들은 그 힘을 세계 평화나 가난한 나라를 구제하거나 세계인들을 위한 긍정적인 곳에 쓸 줄을 모른다. 그것또한 일본의 본질인지도 모른다.

일본은 섬이 곧 국경선이다.
태평양 상에 떠있는 섬을 부표삼아 자신의 영토로 만들 수 밖에 없는 나라다.
북부 5개 섬으로부터 남사군도까지 어쩌면 하와이까지도 까마득한 부표로 착각했었는지도 모른다.
여기에 독도는 두말할 나위 없는 섬이 되었다.
혹자들은 독도의 해저에는 무진장한 지하자원이 있어 이를 탐내는 것이라고 하지만 그것은 부차적인 것이다.

일본은 지금 국내정치에 아무런 흥미가 없다. 더 이상 소득을 높이자고 해도 정치인들의 소관이 아니라고 하고 그 어떤 비전도 일본인들의 관심을 끌 수가 없다. 정치인들이 대중의 관심을 끌 수 없다면 그 존재의 의의가 없는 일 아닌가?
이때에 사무라이의 DNA를 가장 충실히 복제한 듯한 고이즈미가 부지런히 신사를 참배하면서 전의를 불태워 왔다.
신사참배만으로도 한국과 중국을 자극하는 짜릿함을 맛보면서 일본인들의 갈채를 끌어내며 “그래 정치는 이런거야”하면서 대대로 물려온 사무라이의 칼을 쓰다듬고 있을 것이다.

이제 일본인들은 절대 미국을 넘어서면 안된다는 사실을 너무 잘 알고 있다.
미국은 이런 일본이 여가 예쁘지 않다.
크리스챤인 부시가 신사참배를 왜 반대하는지 모르겠다고 했으니 두말할 나위가 있겠는가?

그러면 눈을 한국으로 돌려보자.
지금 한국의 조정은 또다시 사색당쟁으로 얼룩지고 있다.
대통령은 특별담화를 발표하여 독도수호는 곧 대한민국 주권의 수호라고 목소리를 높이면, 조선일보는 ‘일본은 외무성 과장이 독도를 언급하는데 “쪽팔리게” 대통령이 나선다고 한심하다’고 거품을 물고 있다.
대통령의 권위를 생각해야지 그게 뭐냐는거다.

일본 정치는 내국인의 관심을 끌기 위해 그들의 힘을 국외로 쏟는다.
허나 우리 정치는 이때마다 자중지란이 된다.
복제된 사무라이가 있듯이 우리에겐 복제된 친일파가 너무도 많다.
그들은 그것이 생존 양식이 되어버렸다.

지금 외교적인 테크닉을 시비하면서 자신들을 교묘히 위장하는 친일파들이 정쟁을 일삼고 있다.

일본앞에만 서면 작아지는 사람들이 우리 주위엔 너무 많다.
누가 시켜서 그런 것도 아니다.
그건 DNA의 문제인 것 같다.
이제 극단적인 반일을 할만큼 우리의 힘이 왜소하지도 않다.
여유있게 그리고 건강한 역사관을 가진 국민들의 힘과 동북아의 다른 나라와 함께 몰상식한 힘들과 긴장을 유지할 수 있다.
그것이 정치의 본질이다.
일본보다 대통령이 더 미운 사람들은 독도의 공동탐사, 평화적 공동 이용 등의 궤변을 들고 나올지도 모른다.
대원군의 쇄국이 망국을 불렀다며 노대통령을 대원군으로 만들 날도 멀지 않은듯하다.

일본은 그저 수로조사를 위한 것이었는데 우리가 과잉대응을 해서 일본인들의 관심사로 만들어 주었다는 해괴한 논리를 주장하는 조선일보와 그 추종자들을 보면서 독도가 국내정치의 한 부류들의 운신을 괴롭게 할 수 밖에 없다는 것을 알게되었다.

국민을 단결시키는 것이 얼마나 괴로운 일인가?
그것도 일본때문에, 북한때문이라면 몰라도..
이것이 독도의 정치학이다.
그리고 누가 뭐래도 독도는 우리땅이다.

2006년 5월 첫째주 월요일 아침에
한탄강가에서 이  철  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