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의 스크랩

코리아포커스 신년인터뷰-이철우 전 국회의원

한성제피로스 2006. 1. 13. 16:12
[새해에 만난 사람] 이철우 전 국회의원 - 코리아포커스 신년 인터뷰 내용 | 철우와 가족이야기 2006/01/11 11:41
http://blog.naver.com/qksdnjftks/90000798551

“이제 우리 5 대 5 사회를 꿈꾸자”
[새해에 만난 사람] 이철우 전 국회의원

                                                                김경환 기자 , 2006-01-11 오전 10:05:10   
 
포천 경기북부21 사무실에 도착하자 “식사하자”며 바로 대기한 차로 손을 끈다. 일동을 향해 산길을 달렸다. 곳곳에 쌓인 눈이 희끗희끗했다. 장끼 한 마리 놀라서 푸드득 날았다. 경기 북부, 겨울하늘은 눈이 시리도록 파랬다. 쨍한 겨울하늘을 바라보던 그가, 눈길을 거뒀다. 이철우 전 국회의원. 작은 키에 다부진 어깨, 맑은 눈빛이 그전보다 깊어졌다.

“왜 포천이 갈비와 막걸리가 유명한 줄 아세요?”

나름대로 해석이라 전제하면서 그가 들려준 말은 이렇다.

포천은 전방지역이라 군부대가 밀집해 있다. 춥고 배고픈 시절, 장병들을 찾아 부모형제들이 면회를 온다. 가족들은 뭐라도 좋은 걸 먹이고 싶어서, 소갈비를 시킨다. 어여 먹어, 많이 먹어. 소갈비 아니라 닭갈비래도 상관없다. 그 시절 먹어본 고기 맛은 천하일미였을 것이다.

제대를 했다. 결혼을 했다. 아이를 낳았다. 소갈비를 먹어도 그때 맛이 안 난다. 아무래도 한번 가봐야겠어. 가족들을 태우고 포천을 향한다. 한번 먹어보라니깐, 세상에 그런 맛이 없어. 그렇게 입소문이 나고, 모여들기 시작해서 지금의 일동갈비가 유명해진거란다. 막걸리는? “포천이 어디요, 산 깊고 물 맑은 곳 아니요.” 바로 돌아온다. 막걸리밖에 없던 시절, 포천 막걸리 역시 입소문을 타고 그렇게 알려지기 시작했단다.

“정치는 원칙의 총량만큼 녹아 없어지는 것”  
 

새해 먼 데서 손님 왔다고 갈비와 막걸리를 내놓는다. 오늘 정치 얘기 말고, 희망과 인간에 대해 얘기하자니깐, 자신감 넘치는 목소리로 그거 좋단다.

“나는 세상에서 제일 불행한 사람은 꿈이 없는 사람이라 생각해요. 꿈은 죽기 전까지 놓쳐서는 안 되는 소중한 것이고, 꿈이 없으면 삶도 없습니다. 요즘 우리 사회는 꿈이 거세된 사회가 아닌가 싶습니다. 20년 전에 독재와 싸우느라 아스팔트를 기면서도 그땐 꿈이 있었잖아. 지금은 꿈을 잃었어요. 우리 사회에 꿈을 돌려주는 정치와 리더십이 필요합니다.”

막걸리가 나오고 그가 건배를 제의했다. “좋은 꿈 많이 꾸십시오.” 그가 말하는 좋은 꿈이란 무엇일까.

“모든 생명의 원천은 꿈입니다. 저는 구체적인 것은 꿈이 아니라고 생각합니다. 금방 손에 쥘 수 있다면 그건 꿈이라 할 수 없죠. 다소 추상적이고 내 능력보다 조금 큰 것을 꿈이라 할 수 있죠. 그래야 반드시 이루겠다고 노력하고, 그 과정에서 배우고 성장하게 됩니다. 사람들은 자기가 가장 소중하다고 생각하는 걸로 꿈을 만듭니다. 내 꿈은 사람들이 사랑하며 행복하게 사는 것입니다. 그 꿈을 개인, 가족, 지역, 남북, 세계로 연장하고 싶습니다.”

그가 말하는 꿈은 이상(理想)이다. 현실 정치인에게 이상은 어떤 의미를 갖는 걸까. 지난해 말 이라크 파병 연장동의안이 통과됐을 때 많은 의원들이 소신을 꺾었다. 그였다면?

“미국이 패권주의로 전쟁을 일으킨 것은 누구도 부인하지 않습니다. 그런데 언제부턴가 이라크 전쟁의 정당성과 가치에 대해서는 논하지 않고, 한미간의 이해관계만 따지게 됐습니다. 연장하고 끝내자는 분위기가 지배적이 된 것이죠. 나 역시 국민통합위에 있었다면…, 그리 찍었을 겁니다.”

현실과 이상, 이 가운데 현실에 무게를 둔다는 말이다. 그럴 때 원칙은 어떤 의미를 지니는가.

“원칙에도 총량이 있습니다. 현실에서 이상을 실현한다는 것은 원칙을 끊임없이 깎아 먹는 일입니다. 원칙을 소금이라 한다면, 현실은 물이죠. 최대한 맛을 내려면 다 녹아야 합니다. 큰 소금이면 더 오래 녹고, 더 강한 맛을 내겠죠. 나는 내가 가진 원칙의 크기만큼 잘 녹으면 된다고 생각합니다.”

지금, 얼마나 녹은 상태냐고 되묻자 “녹을 기회가 없었다”며 크게 웃는다. 그는 지난해 3월, 의원직 상실 이후 지역에 머물고 있다. 아직까진 구체적인 활동 계획은 없고, 올해부터 본격적으로 움직일 생각이다. 술이 몇 순배 돌았다. 그의 얼굴이 붉어지기 시작했다.

“이제 전반전 지났고, 후반전 남았다” 
 
 
누구의 생이나 굴곡과 곡절이 있지만 그의 인생도 남다른 면이 많다. 학생운동을 했고, 조직활동을 하다 4년 넘게 감옥에 갇혔다. 5년 넘게 고향에 돌아와 농사를 지었고, 한탄강네트워크라는 시민모임을 만들어 활발하게 지역운동을 했다. 17대 때 지역구에서 당선됐고, 국회에서 활동하다 ‘간첩’ 파동에 휘말렸다. 그리고 선거법 위반으로 의원직을 잃었다. 어려움이 남달랐던 그는 그러나, 타고난 낙천주의자였다.

“꿈이 있죠. 그게 큰 힘이죠. 시련이나 고통이 밀려올 때 나는 항상 더 나은 내일을 위한 기회라고 생각합니다.”

그가 요즘 지역주민들을 만나면 주로 하는 얘기도 꿈 얘기다. 그러고보니 오늘 인터뷰의 주제는 그의 ‘전공’이었다. 하루종일 꿈만 생각하고, 평생을 꿈을 꾸겠다는 사람을 상대로 꿈 얘기를 꺼냈으니, 무슨 얘길해도 그리 돌아왔다.

“포천 지역은 과거 군사정권의 논리로 형성된 곳이죠. 보수성향이 아주 강하죠. 한 사람이 수십 년 동안 국회의원을 지낼 정도로 표심이 한쪽으로 쓸려 있죠. 그런 지역에서 처음으로 승리를 해봤습니다. 도저히 허물어질 것 같지 않은 벽도 결국 무너집니다. 그래서 요즘 내가 주민들을 만나면 이렇게 말합니다. 5 대 5 사회를 만드는 꿈을 꾸자. 2 대 8 사회를 5 대 5 사회로 바꾸자. 그래야 이리 몰리고 저리 몰리는 사회가 정상으로 돌아옵니다.”

거듭 어렵지 않느냐고 물어도 “올해 마흔일곱 됐다. 나이보다 젊다는 말을 많이 듣는데, 겉만 그런 게 아니라 속도 철이 없다. 특별히 힘든 건 모르겠다”고 말한다. 그래도 움직이려면, 더욱이 정치를 하려면 돈이 드는 건 당연하다. 재정은 어떻게 충당하나?

“최저생활을 합니다. 보좌진들 월급도 못 주고, 사무실 월세나 겨우 내고 삽니다. 추운 겨울인데 이파리고 뭐고 다 떨구고 앙상하게 살아야지 어쩌겠어요. 그런데 돌아보면 늘 그랬던 것 같아요. 한번도 넉넉했던 적이 없어요. 다만 나는 불편하지 않은데, 주위 사람들을 고생시키는 것 같아 좀 미안합니다. 올핸 좀 나아질 거라 생각합니다.”

다시 찔렀다. 근거가 무엇인가. “그냥 막연한 기대. 별 근거 없어요. 꿈을 믿는 것, 그게 근거라면 근거랄까.” 또 웃는다. 그 웃음이 공허하거나 쓸쓸하지는 않았다. 이때 그에게서 어떤 저력 같은 걸 느꼈다. 그래도 막막하면 두렵지 않을까.

“난 그런 건 좀 덜한 것 같아요. 이 세상에서 제일 행복한 걱정이 돈 걱정이라 합니다. 사업하는 사람에겐 그게 전부지만, 일반 사람들에겐 돈 걱정할 때가 그래도 낫다는 말입니다. 내가 아직 최악이 아니라 그런지는 모르지만 두렵거나 막막하지는 않아요. 이제 전반전 지났고, 후반전이 남았잖아요. 전반전 뛰어봤으니 후반전은 더 잘할 수 있지 않을까요?”

“능력은 많지 않아도 누구보다 꿈이 크기에…” 
 
국회의원은 비록 1년 남짓밖에 안했지만 소회가 있지 않을까. 단맛 쓴맛 다 보다보면 인간에 생각도 달라질 수 있을 텐데….

“정치 1년 하면서 하고 싶은 것도 많았고, 잘할 수 있겠다 싶었어요. 물론 정치하면서 배신도 당하죠. 심지어 내가 데리고 있던 사람이 나를 잘라 달라고 재판부에 탄원서를 낸 일도 있습니다. 그렇지만 미워하게 되지는 않더라구요. 괜히 안돼 보이고, 불쌍하고….”

그거 또 다른 형태의 우월의식 아닌가.

“우월의식이래도 어쩔 수 없어요. 그렇게 해서 정리하고 마는 거죠. 배신감에 치를 떨며 복수해야지 이런 생각 가지면 끝도 없습니다. 나도 누군가를 배신하지 않았을까요? 나도 누구에게는 실망과 배신감의 대상일 것입니다.”

사실이라면 보기 드문 ‘내공’이다. 모태신앙, 독실한 기독교 신앙을 가졌기에 가능한 건가. 아님 정치인이기에, 자기 이미지를 생각해서 그런 것인가.

“나도 모릅니다. 언제부턴가 화가 사라졌습니다. 그 전엔 나도 성질이 급하고, 벌컥벌컥 화를 잘 냈습니다. 그런데 5년 전부터 마음이 평온해졌어요. 주성영이 간첩 운운 할 때도 화를 내지 않으니까 주변에서 바보라고 합니다. 기독교에선 이런 걸 두고 ‘성령’ 받았다고 합니다.”

웃었다. 조금 더 들어가 보았다. 억지로 꾹꾹 눌러 참는 건가. 그거 정신건강에 안 좋은데….

“인내? 아니에요. 그건 실천하기 어렵죠. 성질이 안 올라와요. 글쎄, 인생을 포기한 것도 아닌데, 그냥 한 5년 전부터 그렇게 됐어요. 세상엔 설명하기 어려운 일도 많지 않아요?”

오히려 되묻는다. 그렇긴 하다. 세상엔 이유를 알 수 없이 일들이 얼마나 많이 벌어지는가. 사람의 이성이 대단한 것 같아도 자기 갈길을 명확히 알면서 가는 이가 얼마나 되는가. 그는 출소하고 나서 직접 농사를 지었다. 타고나길 농사짓는 집이었으니 일이야 몸에 익었을 테다. 5년 동안 남의 손 빌지 않고 1만평을 갈고, 심고, 가꿨다. 거기서 뭔가를 배운 것일까. 5년 농사 지으면서 무엇을 배웠나.

“농사는 돈 안 된다는 걸 배웠죠.”

폭소가 터졌다. 김이 빠졌다. 폼 잡고 물으면 솔직하고 단순하게 답변했다. 조금 가볍게 물으면 결코 쉽게 말할 수 없는 말이 돌아왔다. 그는 자신의 묘비에 정치인이자 철학자 이철우, 라고 새겨지길 바란다. 그만큼 현실 속에서 본질을 찾으려 탐색하며 사는 것이다. 정치에 뛰어든 동기가 궁금했다.

“그것도 설명하기 어려워요. 사람들은 공통으로 어떤 현상을 겪다보면 개념을 만들고, 문제가 생기면 해결하려 합니다. 나는 그런 판단이 조금 빠른 편입니다. 그래서 어떤 집단엘 가더라도 한 1, 2년 하다보면 ‘우리 이렇게 하자’ 하고 나서게 됩니다. 나중에 보면 자연스럽게 중심에 가 있더라고요.”

이 대목부터는 단문단답으로 바꿔 속도를 내보자.

- 스스로 리더라고 생각하십니까.

“리더가 되려면 여러 능력이 있어야 합니다. 나는 그런 능력을 갖추지는 못했어요. 하지만 누구보다 꿈은 크다고 생각합니다. 나보다 능력을 갖춘 사람이 나타난다면 협조하고 의지할 것입니다. 나의 욕심 때문에 불필요하게 경쟁하고 싶지는 않습니다.”

- 주말에 교회에 가면 어떤 기도를 하나요.

“한주 동안 지은 죄를 회개합니다.”

- 주로 무슨 죄를 짓습니까.

“그건 내가 알죠. 하느님이 아니라 내 양심이 압니다.”

- 회개하면 좀 나아집니까. 무척 편리한 방식입니다.

“그렇죠. 편리한 방식이죠. 일주일에 한번이라도 나쁜 걸 털어버려야 다른 사람에게도 도움이 됩니다. 자꾸 쌓다보면 나중엔 걷잡을 수 없는 상태가 됩니다. 쌓이기 전에 버리는 게 낫습니다. 능력 있고 영향력 있는 사람일수록 쌓아두면 안 된다고 봅니다. 성능이 큰 폭약은 자기는 물론 주변까지 날려버릴 수도 있죠.”

“과거가 없었다면 지금의 이철우도 없어”  
  
 
”꿈을 이루기 위해 노력한다면 늙지 않는다고 생각해요.”

 
그에겐 아마 ‘빨갱이’라는 소리가 천형처럼 따라다니지 않을까. 지금도 자주 듣고 있지 않을까. 사람이 제 아무리 강골이라 해도 계속 잽을 맞다보면 위축되기도 하고, 자신감을 잃게 되지 않을까.

“지금도 많이 듣습니다. 자꾸 들어야 합니다. 금기는 그렇게 깨지는 것이죠. 간첩이나 빨갱이라는 말이 이젠 내 애칭이 돼 버렸어요. 친일파가 자기 죄를 숨기기 위해 빨갱이를 만들었습니다. 수구세력이 기득권을 유지하기 위해 간첩을 조작했고요. 정작 간첩이나 빨갱이가 필요한 것은 그들이었죠. 이젠 더 이상 사람들이 믿지 않습니다.”

해가 슬슬 저물기 시작했다. 겨울 해는 짧다. 과거 운동 전력 때문에 곤욕을 치른 그이기에 자신이 살아온 지난날이 어떤지 물었다. 대답은 간명했다. “후회하지 않는다.”

“마르크시즘에선 소외를 배웠습니다. 주체사상에선 자주적인 태도를 배웠습니다. 성경에선 신앙을 배웠고요. 나쁜 것에서도, 좋은 것에서도 배웁니다. 과거에 대해 후회하지 않아요. 운명이란 게 있어요. 사람의 힘으로 어쩔 수 없는…. 남조선노동당에 가입할 때도 ‘이건 아닌데’ 하면서도 끌려갔습니다. 과거를 부정하고 싶지 않습니다. 그게 없었다면 어떻게 여기까지 왔겠어요? 한계와 성장 모두가 현재의 이철우를 이루고 있습니다.”

그래도 정치인인데, 정치현안 하나를 끝으로 인터뷰를 마무리했다. 지금 동료 의원이었던 유시민 의원 장관 내정을 둘러싸고 의견이 분분하다. 동료 의원이었는데 어떻게 보나.

“사람마다 가슴 속에 여러 개의 그릇을 품고 삽니다. 어떤 사람은 덕(德) 그릇이, 어떤 사람은재(才) 그릇이, 어떤 사람은 지(知) 그릇이 먼저 찹니다. 순서가 있을 뿐, 사람은 저마다 자기가 받은 크기만큼의 그릇을 채우고 가는 것이죠. 유시민 의원은 지(知)나 재(才) 그릇이 먼저 찬 경우죠. 그가 남은 그릇을 채울 수 있는 기회와 시간을 주자고 하면 안 되는 걸까요?”

넉넉한 마음이다. 그와 산정호수엘 갔다. 꽁꽁 얼어붙은 겨울 호수가 햇빛을 받아 번쩍 이마를 빛냈다. 눈 쌓인 호수에 섰을 때, 그가 허연 입김을 뿜어내며 말했다. 다시 꿈 얘기다. 오래도록, 그의 꿈 얘기가 가슴 속에 남을 것 같았다.

“나이 사십이 되면 사람들이 보수화된다고 합니다. 그게 뭘까 생각합니다. 나이가 들면 1차적 관계에 있는 사람들의 죽음을 자주 경험하게 됩니다. 생물학적 보수화가 오는 거죠. 그런데 사람의 의식마저 보수화되는 걸까요. 그건 아닌 거 같아요. 꿈을 품고 포기하지 않는다면, 그 꿈을 이루기 위해 노력한다면 늙지 않는다고 생각해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