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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월요편지25] 동정녀와 줄기세포 -2005년 전을 생각하며

한성제피로스 2005. 12. 20. 15:09
제 목 : [월요편지25] 동정녀와 줄기세포 -2005년 전을 생각하며
글쓴이 : 이철우
날 짜 :
2005-12-19 12:58
조회 : 18

동정녀와 줄기세포

- 2005년 전을 생각하며 -


  작은 실험실이 폭발하여 온 국민이 상처를 입은 황우석 스캔들의 전모가 밝혀진 듯 합니다. ‘환자 맞춤형 배아줄기 세포 연구’ 논문은 그 상상력은 의미 있지만 검증되지 않은 실험단계였는데 이를 부풀려 과장하고 조작 발표하여 결국은 전 세계 과학계와 한국 국민들을 기만한 꼴이 되었다는 것입니다.

  애초 황우석 팀의 상상력은 그야말로 심장이 뛸 정도의 충분한 이유가 있었습니다. 그러나 황우석은 “꿈의 실험실”을 너무 일찍 세상 사람들에게 보여주었습니다. 실험실을 나온 배아줄기세포는 언론에 실려 떠돌아다니면서 완전한 성공으로 비춰졌고, 이에 취한 황우석 팀은 초발심을 잊게 되었는지도 모릅니다.

  대통령이하 온 국민의 찬사를 한 몸에 받던 ‘영웅’ 황우석이 하루아침에 초라한 ‘피의자’가 되는 세상사를 보면서 많은 사람들이 심리적 공황을 맛보았을 것입니다. 어디가 시작이고 어디가 끝인지 모를 실험실의 일들이 국민의 일이 되어 버렸고 국민들은 자신들의 의사와 무관하게 PD수첩 편이 되든가, 조중동편이 되든가 강요받게 되었고 결국에는 진위논쟁에 말려들어 진실게임의 주인공도 되어 보았습니다.

  이제 이런 생각을 하면서 국민들은 황우석 스캔들의 긴 터널을 빠져나오려 애쓸 것입니다. 첫째, 크게 성공하지 못한다 하더라도 진실하게 살자. 둘째, 모든 것을 정치적(이념적)기준으로 편 가르기 하는 한국언론을 좀 바꾸자. 셋째, R&D 정책의 관리 운영시스템을 이번 기회에 정비하자. 넷째, 이제 모든 것은 우리 모두의 잘못으로 돌리고 심기일전 새 출발 하자. 건강한 사고를 가진 사람들이라면 이 정도로 정돈하고 희망의 새해를 또 기다리지 않을까 상상해 보았습니다.

  줄기세포 스캔들이 훑고간 거리는 그 어느 때 보다 황량한 느낌입니다. 국민들이 온통 초유의 스캔들에 휘둘릴 때도 정치권 일부는 사학법 장외투쟁으로 거리를 더 썰렁하게 만들고 황우석과 사진 찍기 바빴던 정치인들은 그 사진 지우기에 더 신경을 쓰는지 조용하기 이를 데 없습니다. 국민들의 세포 구석구석까지 분열과 반목을 심어주는 한국언론의 그 지독한 이념성을 치유하는 연구는 없을까 생각도 해 봅니다.

  거리에는 평화의 왕으로 오신 예수 탄생을 알리는 크리스마스 캐럴도 강추위와 함께 얼어 붙은 듯 합니다. 이 황량한 거리를 오가는 국민들의 허전한 마음을 달래줄 메시야는 어디로 어떻게 오는 것일까?

  아기예수는 동정녀인 마리아의 몸을 빌려서 태어났습니다. 현대과학적 표현으로 말하면 처녀생식을 통한 ‘난자 복제아’인 것입니다. 예수님의 생애를 다룬 성경의 4복음서에는 마태복음만이 동정녀 출산과정을 상세히 적어 놓았습니다.(마태복음 1:18~25) 4복음서 중 가장 기술 연대가 빠르다는 마가복음에는 탄생과정의 언급이 전혀 없습니다. 요한복음에도 전혀 없습니다. 누가복음에는 당시 호적정리를 위해 요셉이 마리아와 함께 베들레헴에 갔는데 이미 마리아가 잉태 되어 있더라 하는 정도로 애매하게 기술되어 있습니다. 결국 우리가 믿는 동정녀로 말미암아 탄생한 예수는 마태복음에 근거한 것입니다. 물론 구약성서에 짧게 예언되어 있기도 합니다. 현대과학으로 풀 수 없는 탄생의 비밀을 사람들은 굳게 믿고 있거나 믿지 않더라도 논쟁하려 들지 않습니다. 예수님의 탄생-고난-십자가의 죽음-부활-승천 이라는 5막극은 과학으로 증명해야 할 가치가 아니기 때문이라는 것을 사람들은 2000년 동안 검증했기 때문입니다.

  인간의 섹스행위에 대한 죄의식이 유난히 컸던 마태의 생각이 동정녀를 만들었는지 진짜 동정녀 탄생이 마태로 하여금 그렇게 쓰게 했는지 모르지만 이는 믿음의 문제로 해결 되는 것입니다. 그후 사도신경을 만든 어거스틴 신학으로 하여금 확실히 교리화 되었지만 예수님의 인류에 대한 메시지는 탄생-고난-십자가 죽음-부활-승천 이라는 과정에 있기 때문에 이를 두고 논쟁하지 않는 것입니다.

  자신의 이익을 위해서라면 온각 율법의 덫을 놓아 세상를 갈기갈기 찢고 백성의 마음을 갈라 놓던 유대땅에 메시아로 탄생한 예수! 이는 그 어떤 탄생보다 극적입니다. 그 탄생에는 신비가 있으며 경배가 있으며 환호가 있지만, 마굿간 이라는 가장 비천한 모습으로 오는 상식의 파괴가 있습니다.
 
  기득권과 그에 빌붙은 자들이 만드는 강요된 상식과 두려움으로 가득 찬 군중들 속에서 살아가는 예수의 삶은 존재 자체가 고난 일 수 밖에 없습니다. 사람들은 그를 향해 항상 손가락질 하고 수군대고 언제 걸리기만 해봐라 하면서 죽일 기회만 엿보고 있었습니다. 결국 최측근의 배신과 따르던 군중들의 조롱과 경멸을 감내하고 십자가에서 눈물을 흘리며 저들의 무지한 죄를 용서하길 기도하며 숨을 거둡니다. 이 장렬하고 극적인 죽음은 죽음으로 그치는 것이 아니라 부활로서 진리의 승리를 웅변하고 결국은 승천으로 영생을 확인하게 됩니다. 이 일련의 과정 속에 있는 예수 탄생사건은 어떤 과학으로도 검증할 수 없고 어떤 이성으로도 판단할 수 없는 힘이 있는 것입니다.

  하찮은 실험실 사건이 이렇게 온나라를 들끓게 하고 허탈하게 하고 집단적으로 바보로 만들 수 있을까 생각하면서 우리는 이번 성탄을 맞이했습니다. PD수첩이 동정녀의 외아들 예수는 가짜다 라고 보도하면 조중동은 그것은 좌파들의 선전선동이다 뭐 이렇게 만들수도 있겠구나 하는 우스운 상상도 해봅니다. 실험실의 논문을 실험실에서 끝내지 못하는 허위의식이 오늘 우리의 문제가 아닐까 싶습니다. 또 이견이 있으면 곧바로 편가르기에 들어가는 지독한 이념성향의 언론이 메시아가 오던 유대땅의 율법주의자 같은 느낌이 드는 것은 괜한 상상이 아닐 것입니다. 이리 몰리고 저리 몰리는 군중이 되는 것이 얼마나 슬프고 불행하고 처량한 일입니까?

  우리는 의미있는 실험을 했다고 봅니다. 나치치하의 군중들, 스탈린 치하의 군중들, 유신헌법에 90% 찬성을 던진 군중들, 김일성 광장에서 눈물을 줄줄 흘려야 하는 군중들, 예수를 따르며 호산나를 외치던 군중들, 그가 십자가에 달리자 침을 뱉으며 조롱하던 군중들, 반도체라는 21세기 돌멩이에 의지하여 이리 몰리고 저리 몰리며 흥분하던 네티즌이라는 군중들. 그들이 사는 이 땅에 올해에도 어김없이 아기예수는 태어납니다. 아기 예수가 허망한 논쟁으로 인해 상한 마음을 어루만져 주었으면 하는 기도를 하면서 성탄을 기다립니다.

 평화의 왕으로 오신 아기예수가 여러분 마음속에 살아 움직이는 한 주가 되길 기도합니다.






2005. 12. 19 (12월 셋째주)

한탄강가에서  이 철 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