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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월요편지 77] 마이너리티(minority)로 사는 법

한성제피로스 2006. 12. 19. 11:48
제 목 : [월요편지 77] 마이너리티(minority)로 사는 법
글쓴이 : 이철우
날 짜 :
2006-12-18 10:58
조회 : 25
 

나는 대한민국에서 가장 작은 초등학교, 중학교, 고등학교 그리고 대학교를 나왔습니다.
내가 나온 초등학교는 지금 전교생이 50여명에 불과합니다. 중․고등학교 모두 합해야 300명이 안됩니다. 언제 폐교가 될는지도 모르는 벽지에 있습니다. 대학도 입학정원이 2~3만에 이르는 매머드 학교가 아닙니다.
동문회를 가보아도 화려하지 않고 출신 선후배들도 그저 성실한 생활인이 대부분입니다.
그래서 만나면 우리학교 출신들은 성실함 하나로 산다고 자기위안을 합니다.

출신지역과 출신학교까지는 어쩌면 자신의 의사와는 무관한 일인지도 모릅니다.
그럼에도 우리가 살아가는데 음으로 양으로 참 많은 영향력이 있다고 믿고 있습니다.
중앙집권적 시스템이 전통화된 우리 사회에서 어쩌면 스스로 마이너리티라고 인정하게 되는 선천적 이유가 출신지역일 것입니다.
이 ‘出身’이라는 개념도 여간 상대적인 게 아닙니다. 작게는 포천이라는 테두리에서는 포천읍을 중심으로 사고하게 합니다. 그런 의미에서 관인은 구석 중에 구석이었습니다.
좀 범위를 넓히면 포천도 변방 중에 변방이 되고 맙니다.

이 出身의 호적등본을 수정해 보려고 노력하는 최초의 계기는 대학입시일 것입니다.
소위 일류대학을 나오면 마이너리티에서 벗어나리라는 기대가 있는 것입니다.
사법고시, 대기업입사, 각종 전문직의 자격 취득, 연예․스포츠 스타, 일확천금, 이런 것들이 마이너리티를 벗어나는 것일까?
아마 이 과정을 패스한 사람들 사이에서 또 마이너리티와 메이저리티는 나눠질 것입니다. 성골, 진골, 육두품 따위의 우스갯소리가 그냥 나오는 볼멘소리가 아니라는 것을 어떤 조직사회든 느끼고 있을 것입니다.

이런 현상들은 어쩌면 아주 당연한 일인지도 모릅니다.
스스로를 마이너리티라고 생각하면서 끊임없이 메이저리티가 되려고 하는 지향이 발전의 동기일 수도 있으니 말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경쟁이 있을 수밖에 없고 그 경쟁은 때로는 마이너리티의 생존법칙일 수도 있습니다.
그리고 사람들은 스스로는 마이너리티이면서도 자신의 준거집단은 메이저리티라고 믿고 사는 사람도 많이 있습니다. 물론 그 반대도 존재할 것입니다.
출신지역, 출신학교 등이 만들어내는 집단적 귀속의식도 대부분은 허위의식일 때가 많습니다.

이제 나는 진정한 마이너리티 즉 스스로 의식적으로 마이너리티의 길을 선택하거나 강요받은 사람들을 주목합니다.
그길로 가면 뻔히 고생할 줄 알면서 그 일을 하면 당연히 손해를 볼 줄 알면서 그 사람을 만나면 으레 수군거림을 받을 줄 알면서 그렇게 싫어 버린 바가 될 줄 알면서 아주 의식적으로 그 길을 가는 사람이 있습니다.
이런 사람들은 남 보기에는 저항적으로 보이기도 합니다. 평가하기 좋아하는 사람들은 성격이 모난 사람이라고도 합니다.
나도 이와 비슷한 길을 걸어왔습니다.
사실 힘센 자 혹은 정부의 정책에 동의하거나 찬성하기는 너무나도 쉬운 일입니다. 아니 동의하거나 찬성할 것도 없이 그냥 가만히 있으면 됩니다.
그러나 힘센 자나 정부의 정책에 반대하는 것 이것은 쉽지 않은 일입니다. 왜냐하면 마이너리티가 되는 길이니 말입니다.
사람들은 다수가 있는 곳, 힘이 있는 곳 즉 주류의 맨 끝줄이라도 서야 안심하는 본성이 있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스스로를 다수라고 믿는 사람들은 마이너리티를 공격합니다. 이데올로기에 의하든 양심에 의하든 아니면 패거리 습성 때문이든 아마 그것도 본성인 모양입니다.
이런 이유로 마이너리티는 저항적이게 보입니다.

때로는 마이너리티가 주류가 되기도 합니다.
마이너리티 시절의 성실성, 인내심, 그 희생정신 그리고 시대적 적절성 등이 어우러지고 개인의 맨파워까지 갖춰지면 주류가 되기도 합니다.
스포츠스타, 연예인들 혹은 개천에서 용났다고 뉴스를 장식하는 사람들 이들을 보면서 많은 사람들은 부러워할지도 모릅니다.
그러나 그들 중에 대부분은 더 큰 상처를 안고 마이너리티로 돌아옵니다.
그곳에 올라가면 예전 마이너리티로 살던 습관으로는 도저히 살 수가 없기 때문입니다.
스스로를 유지하기 위한 사람들의 경쟁이 겉으로 보기에는 젠틀해보이고 화려해 보이지만 그 이면에는 음모와 배신으로 가득 차 있기 때문입니다.
그 음모와 배신이 자연스럽지 못한 마이너리티는 그만 되돌아오고 마는 것입니다.

많은 386정치인들이 사실은 정치적으로나 사회적으로 마이너리티 중에 마이너리티였습니다.
단지 대학을 동시대에 다니면서 저항운동을 했다는 것 하나 뿐이었습니다.
물론 어디에 내어 놓아도 경쟁력 있는 자신들만의 공부는 다 했겠지만 나를 포함한 그 386들이 지금 마이너리티의 헌신성, 성실성, 뜨거운 사랑을 잊어버린 것 같습니다. 아니 가지고 있더라도 입술로만 달싹이지 잠꼬대 같은 되뇌임만 하고 있습니다.
이 땅의 마이너리티들이 사법고시 패스한 법조계의 마이너리티 노무현을 마이너리티의 대변인으로 뽑아 보았지만 결과는 마이너리티들이 더 큰 모욕만 당하는 세상이 되었습니다.
헌신성, 성실성, 그리고 인간에 대한 뜨거운 사랑을 잃어버린 마이너리티의 상승은 불행이라는 것을 어리석게도 이 모든 일이 있은 후에야 알게 되었습니다.
대한민국은 아직도 일탈을 허용하는 범위가 너무나도 좁다는 것, 그리고 경쟁이 순수하지 못하다는 것 (물론 아닌 곳도 많지만) 그러므로 마이너리티 때의 순결함을 유지하고서는 메이저리티가 될 수 없다는 것을 이제야 알게 되었습니다.

이 복잡한 言事를 예수님은 한마디로 비유했습니다.
“부자가 하늘나라에 가느니 낙타가 바늘귀를 지나는 것이 쉽다”

그래서 정호승시인은 예수를 두고 비유의 천재요 시인 중에 시인이라 했던 것입니다.
이번 주는 그 예수가 이 땅에 태어난 날이 들어있습니다.
갈릴리, 말구유, 목수의 아들, 그리고 로마의 식민지 이스라엘
마이너리티 중의 마이너리티 예수
그는 대학에 간 적도 없고 사법고시를 본 적도 없으며 국회의원에 당선된 일은 더더욱 없지만 유대인의 왕이라 일컬음을 받다가 형장에 매달리고 말았던 예수
그런 예수를 바라보면 마이너리티로 사는 법을 알 수 있을 것 같습니다. 유일한 방법입니다.

여러분! 축 성탄입니다.
Merry Christmas!


2006년 12월 18일
한탄강가에서 이철우